[연재내용]

  • 미국의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 아날로그? 디지탈? 혼성모드? 어떤 것을 해야 하지?
  • 시스템 보는 눈을 키워라
  • 영어, 겁먹지 말아라.
  • 우회가 때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 Just Do It

아날로그? 디지탈? 혼성모드? 어떤 것을 해야 하지?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 와 ‘비메모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부동의 세계 1위 입니다. 초창기 미국과 일본에 의해 주도 되었던 메모리 반도체를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이 시장을 접수했죠.  미국의 마이크론을 제외하면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의 두 회사가 독점 (시장 점유율: 약 60%) 하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설계 기술보다는 공정 기술 입니다. 공정 기술로  실리콘 웨이퍼 안에 더 많은 메모리 셀을 만드는 기술이지요. 한국 민족이 가지고 있는 섬세함과 정교함이 메모리 반도체에 잘 맞아 떨어진 셈이랄까요?

그렇다면 비메모리 반도체는 어떨까요? 일단, 시장 규모로 봤을 때 메모리 보다 시장규모가 약 3배 정도 큽니다. 어마무시하죠. 그런데 한국의 비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어떻까요? 약 3% 정도 밖에 안됩니다. 아래의 오른쪽 파이 그래프를 보시면, 비메모리 반도체 (시스템 반도체라고 함) 시장 점유율은 한국이 일본, 대만, 그리고 중국보다 낮은 수준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대만이 일본보다 높다는 것이 놀랍군요.

자료출처: https://luxmen.mk.co.kr/view.php?sc=51100002&cm=Cover+Story&year=2020&no=95025&relatedcode=&searchEconomyHosu=113

한국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보면 메모리와 비메모리 간에 큰 불균형이 있습니다. 한쪽으로 너무 편식을 한 거죠. 결국, 한국의 반도체 미래는 비메모리 반도체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메모리 반도체도 지금의 위치를 유지해야 합니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미국이 꽉 쥐고 있고 핵심은 공정이 아닌 설계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 기술을 배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설계 엔지니어들이 비메모리 설계 엔지니어로 미국에서 경력을 쌓는 것은 엔지니어 개인적인 차원 뿐 만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자, 그렇다면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 분야를 좀 더 들여다 보도록 할까요?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 분야는 크게 3 분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 회로 설계, 디지탈 회로 설계, 그리고 이 두개를 다루는 혼성모드 회로 설계 입니다. 물론, 좀 더 확장하면 시스템 설계, 공정 설계, 개발 툴 설계 등도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아날로그 회로 설계는 전통적인 전기/전자공학의 분야로 가장 역사가 오래 되었습니다.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디지탈 회로 설계가 시스템의 주류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아날로그 회로가 없으면 어떤 반도체 회로도 동작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신호가 아날로그 신호이기 때문에 모든 시스템은 아날로그 신호를 처리해야 합니다. 게다가 디지탈 신호도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부분 아날로그 신호로 재 해석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아날로그 회로 설계를 하려면 알아야 할 것들이 좀 많다는 거죠. 전기/전자회로 관련 지식 뿐 만 아니라 물리학, 수학 그리고 때로는 화학도 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죠. 그러다 보니 ‘희소성’ 이  높습니다. 경력이 어느 정도 있으면 미국에서 일할 기회를 잡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증폭기, 전력 반도체 등이 여기 속합니다.

디지탈 회로 설계는 수요도 많고 엔지니어도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아날로그 회로 설계처럼 여러 분야의 디테일한 지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을 이해하고 설계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전체 숲을 보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디지탈 신호처리에 대한 다양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디지탈 회로의 대부분을 프로그램 언어를 통하여 설계하기 때문에 코딩에 대한 지식도 필요합니다.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이 분야는 폭발적으로 발전했고 그 수요는 더 늘어나게 될 것 입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이 부분이 많이 취약합니다. 그 만큼 큰 그림을 보고 시스템을 다룰 줄 아는 엔지니어들이 부족하다는 의미겠죠. CPU, GPU, AP 칩들이 이 분야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혼성모드 회로 설계는 아날로그 회로와 디지탈 회로의 경계에 해당하는 분야로 두 분야에 대한 지식이 모두 필요합니다. 다만, 각 독립된 분야 만큼의 깊이 있는 지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독립적 기능을 가진 칩들이 하나의 칩으로 집적 (이것을 SOC: System On Chip 이라고 하죠)  되어가면서 혼성모드 회로 설계가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저비용과 고성능 그리고 낮은 전력를 위해서는 많은 독립된 회로들이 하나의 칩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때문에 혼성모드 회로 설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데이터변환기와 SerDes 가 이 분야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일하려면 어느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야 좋을까요? 자신의 적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아날로그 혹은 혼성모드 회로 설계 분야에서 경력을 쌓는 것이 상대적으로 미국에서 일하는 기회를 얻기 쉬운 것 같습니다. 디지탈 회로 설계도 많은 기회가 있기는 하지만 이 분야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경쟁이 심합니다. 특히, 인도 출신 엔지니어들은 소프트웨어적 감각이 뛰어나서 디지탈 회로 설계를 잘하고 엔지니어 수도 많아서 이들과 경쟁하려면 쉽지 않죠. 물론, 아날로그 및 혼성모드 설계 분야도 중국과 대만 출신의 엔지니어과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은 우수한 비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이 높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설계를 통하여 그 잠재력을 확인 받아왔고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중요성과 인식이 높아져 많은 지원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한국의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들이 한국이라는 땅에 한정되지 말고 넓은 세상 속에서 다양한 설계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더 많은 젊은 엔지니어들이 이 분야에서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