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계를 전공하거나 그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 미국에서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기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몇 회에 걸쳐 글을 연재 합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연재내용]

  • 미국의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 아날로그? 디지탈? 혼성모드? 어떤 것을 해야 하지?
  • 시스템 보는 눈을 키워라
  • 영어, 겁먹지 말아라.
  • 우회가 때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 Just Do It

시스템 보는 눈을 키워라

이번 글에서는 회로 설계 엔지니어로서 갖추어야 할 여러 자질  중에 특히, 시스템 보는 안목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수 십년 전 대학에서 전공과목 수강할 때로 기억합니다. 미국에서 막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교수님의 수업이었는데 수업시간 마다 항상 강조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필자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나무도 보이지 않는데 웬 숲?’ 이라고 생각하며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수 십년이 지난 지금, 필자에게 회로 설계 엔지니어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물어본다면, 특히 미국에서 회로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기 원한다면, 숲을 보는 능력, 즉, 시스템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회로 설계 엔지니어들이 놓치기 쉬운 것 중에 하나는 회로 하나 하나에 집중을 하다 보니 다른 블럭과의 상관 관계에 대하여 소홀히 하는 것 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대부분의 회로들은 커다란 시스템 안에서 다른 블럭들과 함께 연동되어 돌아가기 때문에 전체 시스템을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시스템 안에서 내 회로가 다른 회로들과 어떻게 연동되어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 시스템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이해를 해야 하고 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에서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며 배운 것은 시스템을 보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겁니다.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회로만 생각하고 설계하면 반드시 나중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설계한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물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워 나갈 수 있지만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들 속에서 효과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줄여야 하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스템 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를 아래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업무와 관련된 용어를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자기들 만의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프로젝트 코드명 혹은 업무 프로세스 이름들 입니다. 이들 용어들은 회사 밖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 이고 이들 용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업무 자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용어가 나올 때마다 매니저 혹은 동료들에게 문의를 해서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미국 회사는 대부분 업무에 대한 문서화가 잘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업무 관련 문서를 참고하면서 용어를 배워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메모장을 만들어 새로운 용어가 나올 때 마다 잘 정리해 놓으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둘째,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을 알아야 합니다. 특정 업무와 그 업무 담당자들 특히, 담당자들의 매니저들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 회사에서는 업무들이 세분화 되어 있고 담당자들이 잘 배정되어 있어서 업무진행시 발생하는 문제 및 의문사항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몇 일 동안 고민해야 할 문제를 적합한 담당자를 통하여 몇 분 안에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이직율이 높기 때문에 업무 담당자 뿐 아니라 그 담당자의 직속 상관 (미국에서는 보통 ‘매니저’ 라고 부르죠)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어제까지 함께 일하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퇴사해서 없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를 대비해 업무 담당자의 매니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규모가 있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사내 주소록을 통하여 업무 담당자의 매니저를 명시해 두기 때문에 사내 주소록을 잘 활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세째, 가까운 동료들이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까운 동료’ 라 함은 자신이 설계하는 블록과 인접한 블록을 설계하고 있는 동료들을 말합니다. 인접한 블록 설계 동료들의 업무는 가능한 자세히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시간이 된다면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해 가면서 다른 동료들의 업무를 이해해 나가면 좋습니다. 인접한 블록이기 때문에 자주 만날 수 있고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습니다. 동료들이 작성한 발표 자료와 문서를 자주 보면서 동작원리를 이해하고 자신과의 블록 사이에서 어떻게 신호를 주고 받는지 이해를 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동료들이 만들어 놓은 시뮬레이션 Test Bench도 들여다 보면 좋습니다.

네째, 매니저를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미국 회사의 매니저들은 기술적인 부분 뿐 만 아니라 업무 전체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 매니저들에게 문의를 하기 전에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문의를 하면 좋습니다. 사전 지식이 없이 무작정 매니저에게 문의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한두 번은 괜찮지만, 자칫 자신의 업무 능력을 부정적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자세한 정보를 요구하는 질문보다는 시스템을 이해하는 차원의 질문을 던지면 좋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매니저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게 됩니다.

다섯째, 다른 블록 설계를 경험하고 싶다고 회사와 매니저에게 계속 요구하기 바랍니다. 설계 엔지니어들의 특성상 자신의 설계 블록에 전문성을 키우는 일은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미국 회사들도 이러한 전문성 때문에 설계 엔지니어를 고용하는 것도 사실 입니다. 하지만, 한 회사에서 몇 블록만 오랫동안 계속 설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자신의 경력과 경험을 좁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미국 회사에서는 ‘우는 놈’ 한테 기회를 먼저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일을 잘 해 왔으니까, 다른 기회를 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서 하고 싶은 분야와 블록을 말하지 않으면 새로운 설계 블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블록을 계속 도전해 봐야 시스템 보는 눈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시스템 보는 시야가 넓어지면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계속에서 눈에 보이게 됩니다. 소위 ‘선순환’ 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자신의 설계 블록에 집착하지 말고 반드시 새로운 블록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회사내 문서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회사들은 업무에 대한 문서화가 매우 잘 되어 있습니다. 업무 담당자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문서화를 해야 합니다. 문서화 능력은 업무능력의 하나로 평가되며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능력입니다. 따라서, 업무에 관련된 많은 문서가 있고 이 문서의 활용 능력이 자신의 업무 능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문서는 업무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이며 전체 시스템을 이해함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줍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미국 회사에서는 자신의 업무 뿐 만 아니라 전체 시스템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통하여 커다란 프로젝트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다른 업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원활한 소통을 이룰 수 있습니다. 때때로 자신이 담당한 블록내에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시스템 레벨에서 쉽게 해결되기도 합니다. 시스템은 여러 블록과 많은 사람들의 협업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많은 지식이 녹아져 있습니다. 시스템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하면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시야가 많이 넓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